저는 1960년대에 태어나 남원 근교의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소 꼴을 베어다 먹이고, 집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지냈습니다.
당시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제 어린 시절도 지극히 평범했다고 생각합니다.
학업을 이어가야 할 시기에 남원은 소도시였고, 더 큰 도시로 나가 새로운 경험을 하려면 나름의 선택
이 필요했습니다. 가까운 대도시는 전주였고, 그 외에도 당시에는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는 특수고등학교들이 몇 곳 있었습니다.
그런 학교들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있었고, 시골을 벗어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철도공무원이 되겠다는 뚜렷한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시골을 떠나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런 마음이 진로
선택으로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철도공무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Q.열차 사고를 겪던 당시 상황과,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사고가 발생한 지 어느덧 40년이 넘었습니다. 당시 저는 스무 살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나이는 성인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많이 미숙했던 시기였습니다.
사고 순간에는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났습니다. 의식을 되찾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내가 살았나? 아, 살았구나.’
그것이 정말 처음 든 생각이었습니다.
잠시 후 몸을 조금씩 움직여 보며 살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고, 이어서 제 몸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손을 보고,
다리를 살펴보며 처음에는 큰 이상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몸을 돌려 확인하는 순간,
오른쪽 다리가 이미 절단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발목 위쪽에서 절단된 상태였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사실을 인식하기 전까지는 통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크게 다쳤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통증이 한꺼번에 밀려왔고, 그 이후에는 통증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다만 통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아주 짧은 순간 스쳤던 생각이 있습니다. 지금 표현이 조심스럽지만, 그때는
‘병신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오롯이 통증과 싸우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Q.사고 이후 다시 사회로 복귀해야겠다고 결심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사고 당시 저는 철도 공무원 신분이었습니다. 그대로 머물렀다면 큰 무리 없이 정년까지 갈 수도 있었고,
현실에 안주한다면 비교적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안정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기에는 제 안에 여전히 이루고 싶은 꿈과,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기존의 자리에 머무르기보다는
사표를 내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선택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은 결국 선택의 연속이라고 느낍니다. 특히 큰 어려움에 마주했을 때는 그 상황을
대하는 방식도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피해 가는 방법도 있고, 포기하거나 돌아가는 선택도 가능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려움은 피해 간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마주하게 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은 회피하거나 포기할 대상이 아니라, 결국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사고 이후의 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 중 하나였지만, 그 앞에서 다시 사회로 나아가기로 했던
선택은 지금 돌아보면 제 삶을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만든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장애를 직접 경험한 이후,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장애를 갖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존재가 되거나,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실제로 일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장애에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저 역시 장애가 있지만, 가능한 한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게 생활해 왔고,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일상에서는 큰 불편 없이 지내는 경우가 많고, 수영이나 목욕탕처럼 불가피하게 장애가 드러나는
상황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주변 사람들 역시 제 장애를 특별하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저는 장애를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것이지, 타인의 시선을 대신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장애를 갖게 되면 이전과 같은 목표와 꿈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특히 후천적
장애의 경우에는 삶의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저는 그 과정을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다시 설정하듯,
인생을 한 번 ‘리셋’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지점에서 새로운 목표와 새로운
꿈을 세우고, 다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면 된다고 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들이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입니다.
저는 각자가 자기 인생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Q. 치과의사가 된 이후 꾸준히 봉사활동과 기부를 이어오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시작과 동기는 무엇인가요?
사고를 직접 겪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텐데, 그 사고는 조금만 상황이 달랐다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운이 따라주었고, 비교적 큰 후유증 없이 다시 일상과 사회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새로운 삶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을 제2의 인생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원래 태어난 생일이 있다면, 사고 이후 다시 살아났던 그날을 제 마음속에서는
또 하나의 생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을 우울한 기억으로만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끼다 보니, 이 삶은 제게 주어진 덤 같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욕심만을 위해 살아가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이런 생각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당시부터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제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봉사와 기부를 하나씩 실천해 왔습니다.
지금은 치과의사로서의 일이 제 본업이라면, 봉사활동은 제 삶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이 되었습니다.
부담이나 의무라기보다는,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Q. 사고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사고 이전의 저는 인간적인 욕심이 많았고, 삶에서 더 많은 꿈과 목표를 이루고자 노력했습니다.
자신만의 작은 욕심을 채우는 데 집중했던 점에서 보면, 지극히 평범한, 당연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를 겪고 나서, 제 삶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고 덕분에 새로운 삶을 얻었고, 그 자체가 제게 주어진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처럼 자기 중심적인 욕심보다는, 다른 사람과 꿈과 시간을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됐습니다.
물론 마음을 내려놓고 봉사와 나눔을 한다 해도, 완전히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조금이라도 주고자 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고 이후 저는 이전보다 더 깊이 다른 사람과 나누고 함께하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Q. 2025년 호국보훈의 달 정부포상식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으셨는데, 어떤 마음이 드셨고 앞으로의 삶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지난 30년 가까이 이어온 봉사활동과 기여를 주변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상은 단순히 지난 시간을 칭찬하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다는 점에서, 저에게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채찍과 당근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는 상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에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더 나은 행동과 나눔을 실천하라는 다짐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솔직히 요즘도 ‘앞으로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지만,
그 고민 자체가 제 삶을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Q. 이번 한국교통장애인협회 인터뷰를 통해 교통사고 후유장애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 교통사고로 인해 힘겹게 살아가고 계신 많은 교통장애인분들께,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감히 그런 말씀을 드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여러분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고 자체는 어쩌면 신의 영역이었을지 모르지만,
사고 이후의 삶은 우리의 선택으로 만들어가는 인간의 영역입니다.
물론 우리가 선택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들이 사실은 운명이나 신의 뜻에 달려 있을 때도 있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만큼은 긍정적으로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고통과 역경 앞에서 피해 가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고, 돌아가는 것도 선택이며, 극복하는 것도 선택입니다.
결국 어떤 선택이든 본인의 결정이지만, 가능하다면 극복을 선택해서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Q. 김락환중앙회장님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김락환 중앙회장님께 한 말씀 드리자면, 회장님께서는 수십여 년 전 장애를 겪으신 이후,
지난 세월 동안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해 오셨습니다.
그런 회장님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장애를 겪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렇게 의미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시고 함께해 주신 김락환 중앙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